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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 분쇄기 고장난 후 드라마에 빠진 일상

며칠 전, 내 인생의 소소한 파트너가 갑자기 사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물 분쇄기가 고장 났다. 아침에 설거지를 하려고 스위치를 누르는데, 웅웅거리는 소리만 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다. 처음엔 ‘에이, 잠깐 멈춘 건가?’ 하고 몇 번 더 눌러봤지만, 결국 포기. 결국 손으로 찌꺼기를 건져내는 고역을 치렀다. 그 순간, 이 기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평소엔 별생각 없이 썼는데, 없으니까 은근히 불편하더라. 요즘 한국경제 기사에서도 주방 가전 수요가 늘었다고 하던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간편한 주방 도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나처럼 분쇄기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진 모양이다. 예전에 이사 왔을 때 분쇄기가 있길래 ‘이런 건 처음 써보는데’ 했는데, 지금은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됐다.

오물 분쇄기 고장난 후 드라마에 빠진 일상

사실 오물 분쇄기는 프리랜서인 나에게 꽤 중요한 아이템이다. 집에서 일하다 보면 식사도 불규칙하고, 설거지도 자주 미루게 된다. 그러다 쌓인 찌꺼기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냄새를 풍기면 그때야 후회한다. 그래서 분쇄기가 고장 나기 전까지는 거의 매일같이 썼다. 생선 비늘이나 야캐 껍질 같은 건 바로 갈아버리니까 위생적이고, 배수구도 막힐 일이 적었다. 그런데 이번 고장으로 다시 손으로 일일이 거르는 구닥다리 생활로 돌아갔다. 이틀 만에 손이 거칠어지고, 싱크대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생선을 손질한 날은 더 심했다. 찌꺼기를 거름망에 긁어 모으면서 ‘이걸 왜 내가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게다가 배수구가 살짝 막힌 것 같아서, 중간에 한 번 뚫느라 또 고생했다.

고장 난 분쇄기를 들여다보니, 아마도 모터가 나간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수리비가 꽤 나온다고 해서 잠깐 고민했다.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요즘 나오는 신형 모델들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최근에는 소음이 적고 자동 세척 기능이 있는 제품도 있더라. 예전에 샀을 때만 해도 그냥 무조건 갈아주기만 하면 됐는데,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위키백과에서 오물 분쇄기의 역사를 읽어보니, 1927년에 처음 발명된 이후로 꾸준히 발전해왔다고 한다.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문명의 이기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는 200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보급됐다고 한다.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기본 옵션으로 달아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말이지, 분쇄기가 고장 난 덕분에 예상치 못한 취미를 발견했다. 바로 드라마 몰아보기다. 평소에는 바빠서 드라마를 거의 안 봤는데, 분쇄기 수리 때문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OTT에 손이 갔다. 마침 친구가 추천해준 ‘더 글로리’를 보기 시작했는데, 한 번 빠지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 송혜교의 연기도 좋았지만, 복수 극의 긴장감이 내 일상에 자극을 줬다. 분쇄기 고장으로 생긴 공백을 드라마가 채워준 셈이다. 생각해보면, 고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예전에는 퇴근 후에도 작업 이메일 확인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는 저녁마다 드라마 한 편씩 보는 게 루틴이 됐다.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오물 분쇄기와 드라마의 공통점이 뭘까 고민했다. 둘 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는 점? 분쇄기는 찌꺼기를 갈아 없애는 물리적 해소고, 드라마는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정신적 해소다. 요즘 사람들이 힐링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일보 기사에서도 최근 OTT 이용 시간이 늘었다는 통계를 봤는데,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위안을 찾는 모양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특히 MZ세대 사이에서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분쇄기로 찌꺼기를 갈아버리는 그 시원함과 드라마에서 복수의 쾌감을 느끼는 게 비슷한 심리일 거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된 점이 있다. ‘더 글로리’에서는 학교 폭력과 사회적 계급 문제를 다루는데,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10년 넘게 준비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프리랜서로서 불안정한 수입과 불규칙한 생활에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런 고통을 겪고도 끝까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위로가 됐다. 물론 내 문제는 분쇄기 고장 정도로 가벼운 편이지만, 그래도 ‘작은 고통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일상의 작은 불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나는 새 분쇄기를 사기로 결정했다. 수리비가 아깝기도 했고, 신형이 더 조용하다는 평이 많아서다. 주문하고 배송 오기까지 3일, 그동안은 드라마로 버티기로 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분쇄기가 없으니까 요리를 덜 하게 되더라. 귀찮아서 간단히 먹거나 배달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식비가 좀 올랐지만, 대신 드라마 보는 시간이 늘어서 만족스럽다. 어쩌면 이게 내게 필요한 디지털 디톡스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SNS를 보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집중하게 해서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요즘 콘텐츠들이 정말 정교해졌다는 점이다. ‘더 글로리’에서는 악역의 심리까지 세밀하게 묘사해서,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선다. 덕분에 나도 복수보다는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실 내 일상에서 오물 분쇄기 고장 같은 작은 불편은, 큰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짜증이 나니까,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고통에 공감이 더 갔다. 콘텐츠가 주는 힘이란, 이런 작은 연결고리에서 나오는 것 같다. 특히 요즘 OTT 플랫폼들은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데, 덕분에 나도 내 취향에 딱 맞는 드라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분쇄기가 도착한 날, 바로 설치하고 시험 가동을 했다. 예전 모델보다 소음이 확실히 적었다. 밤에 돌려도 이웃에게 민폐가 아닐 정도. 게다가 자동 세척 기능이 있어서 관리도 편하다. 이틀 동안 손으로 찌꺼기를 걸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 불편함을 겪고 나니 새 제품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 사람은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진짜 그렇다. 설치 후 처음으로 감자 껍질을 갈아보면서, 그 시원한 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드라마에서 복수가 성공한 순간처럼 통쾌했다.

이제 다시 분쇄기를 쓰면서 드라마도 꾸준히 볼 예정이다. 다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의 이야기가 꽤 감동적이라고 해서 기대된다. 분쇄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재미를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작은 고장이 오히려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경우가 있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평소에 지나쳤던 소소한 것들에 더 주목하게 됐다. 오물 분쇄기 하나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앞으로는 주방 가전뿐 아니라, 집 안의 모든 물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혹시 분쇄기 고장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리보다는 교체를 추천한다. 신형이 확실히 성능이 좋고, 전기세도 덜 나온다고 한다. 물론 드라마 추천도 같이 해준다. ‘더 글로리’ 강추. 분쇄기와 드라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분이다. 앞으로도 이런 작은 발견들을 블로그에 기록해볼 생각이다. 오늘도 무사히 분쇄기가 돌아가서, 나는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한다. 그리고 내일은 드라마 보면서 감자칩을 만들어볼까 한다. 분쇄기가 있으니 껍질 벗기기 훨씬 수월할 테니까.